삶 자체는 축복이다.

삶 자체는 축복인 것 같아요.

기분이 복잡해지고, 답답함에 미칠 것같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지나가다 마주치는 예쁘고 귀여운 아이의 환한 미소,

지나가다 마주치는 강아지, 고양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볼 수 있다는 것,

이건 정말 큰 축복이에요.

볼 수 있고,

두 다리, 두 팔을 쓸 수 있고,

머리가 천재는 아닐지라도,

발달에 장애가 있지도 않고,


그런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 해야할까요?

왜 두려워해야 하는거죠?


축복받고, 건강한 몸을 선물 받고

넓은 세상과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있다는 것은


아마 그걸 잃거나, 가져보지 못하지 않는 이상

와닿지 않을 겁니다.


공기나 물, 음식이 풍족하니 

배고픔이나 고마움을 모르고 살게되듯이요.


그래서, 이 축복을 이용하여

열심히만 한다면

제대로만 한다면

하고자 하는 그 무엇이든지 

우리 모두 될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내 인생을, 타인의 생각과 의견에 맞추는 건가요?

그들이 도움을 줍니까? 그들이 내 인생을 끌어다줍니까?

책임이라도 져줍니까? 죽을때 같이 죽어준다고 합니까?


모두의 공감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꿈이 있고, 각자의 길이 있는 법.

그래서 정답이 없는 인생이겠죠.


공감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억지로

이해와 공감을 바라며 시간낭비할 순 없습니다.

분명 이 넓은세상에서, 발달된 인터넷세상에서

우리는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그들의 꿈이 되고, 그들의 목표가 되고

그들에게 삶의 방향표가 되죠.


두려울 이유가 없습니다.

사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달픈 순간이 있고,

각자 고통이 있겠죠. 


결국, 잘살았던 못살았던 죽는건 평등하잖아요? 

그렇다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죽기 전에 내 삶을 되돌아볼 때, 진정 하고싶은 걸 못할까

그것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제 생각에 사실상 50살 이후로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늙었다고 생각됩니다.

열정이 20대, 30대에 비할 수없겠죠.

에너지도,

몸 여기저기가 고장이 나게되고

수술과 약물에 의지하여 삶을 연장하게 되는 것뿐이라는 생각.


그렇다면 우리가 진짜 하고싶은게 있다면

그것이 여행이 됬든, 나의 소망이 됬든, 꿈이 됬든

왜 타인의 시선에 기준을 맞춥니까?


젊음은 정말 짧습니다.

이제 20대 중반이라면 기껏해야 50살까지

25년 밖에 안남았네요. 


우리의 삶은 오직 오늘, 지금, 현재, 이 순간일 뿐입니다.

오늘이 과거이고, 기다리는 내일은 또 오늘로 찾아오고,

오늘, 이 순간을 놓치면 과거도 없고, 내일도 없죠.

놓친 시간들은 되돌아오지도 않고,

후회해도 아쉬워해도 죽는 순간에 리플레이 할 수 없죠.


눈치 보고 산다는 것.

눈치를 보고, 오지랖 넓은 참견쟁이들의 의견에 휩쓸려 산다는 것.

이것이 내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고 있지는 않나요?


근데 궁금한건, 눈치를 잘살피고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한 길인가요? 그렇게 살면 부자가 되어 잘살게 되나요?


근데 왜 무언가를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수년, 수십년을 

눈치보지 않고 도전하고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보였을까요?

자기만의 길을 가겠다는 고집, 현실앞에 포기하지 않는 의지.

결국 이사람들은 큰 무언가를 이루게 되고, 눈치보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라구요. 


저는 어린시절을 온통 눈치보면서 살아왔더니,

정신이 고갈되고 비참해진 것을 느낍니다.

결국 행복해지지도 않았고, 잘살게 되지도 않았구나.

그렇다면 눈치를 왜 봐야하지?


어차피 성공도 어려운 건 사실이겠으나,

그냥 한번밖에 못사는 거니까 

죽기 전에 하고싶은걸 최대한 해보고 죽자.

그렇다면 눈치를 보면서 할순없다.

그냥 내 느낌이 끌리는대로 가는 거다.

문득 여행이 가고싶다면, 몇달준비해서

누군가와 같이 가길 기다리기 보다,

혼자서 과감하게 떠나보는 것.


서양문화권에서는 다큰 성인이면 

혼자서 해볼줄 알고, 혼자서 떠날줄 알고, 혼자서 먹을줄 알고,

자립의식이 있어야 되는게 당연한 건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죠. 

다수의 획일화된 모습, 어떤 틀같은 기준

외국에서보면 웃긴거죠.

개성이 없는 인간들. 자기 생각은 없이 사는걸까?

마치 매트릭스의 틀에 갇혀서 살아가는 듯.

그 틀을 넘을 생각조차 못하고 살게되는 것같습니다.


인생이라는 게임을 축구에 비유하자면,

90분의 경기는 이제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고 하니

평균 90세의 수명이라고 치면,

10대는 10분, 20대는 20분, 30대는 30분, 40대 중반 정도 되어야

이제 축구경기 전반전까지 간 것이겠죠.


근데, 축구를 하고 있는데

전반전에 0:1, 0:3 이렇게 지고 있다고

의지도 없이 포기해버리는 이길수가 없죠.


절대,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노력없인

이길 것도 지는게 당연하겠죠.


이길 수 있다는 믿음과 노력이 있다면

이길 수도 있고, 지더라도 후회없는 멋진 패배가 되겠죠.


전 앞으로, 50살 까지 얼마남지 않은 이 짧은 시간들을

제가 뛰고 있는 경기에 집중할 것입니다.

축구선수가 관중들의 야유 따위에 귀기울여서야

경기 제대로 뛰겠습니까?


그들은 얼마나 잘뛰고 있길래,

남의 인생에 오지랖을 발휘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대체로 남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남의 실패에 대해선 안도감을 느끼고,

남의 성공에 대해선 시기질투 하고,

그저 남의 인생에만 관심이 있는

자기 인생은 없나?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습니다.

여태껏 신경쓰고 살았더니, 삶이 피곤해지고 지치는 걸 느꼇고,

아무 도움 안되는 걸 느꼈습니다. 


전 이제 죽는 건 두렵지 않습니다.

어릴땐 굉장히 두렵고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죽는 것보다, 죽기전에, 늙어 병들기 전에,

진짜 이 소중한 시간들을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에 집중하고 살아냈는가.

그것이 후회될꺼 같아서 그것만 신경쓰도록 하곘습니다.


결국, 각자의 인생은 각자 자기자신에게 달린 것이고,

자기 자신조차 행복하게 못하면서 타인에게 행복이 어쩌고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 만이 태어나고, 쭉 살아오고, 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생을 살아가기에.

내가 책임질 것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행복하게 만들어야 할 가장 우선순위는 나 자신입니다.

나는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뒤에야 타인의 인생을 돌볼 수 있겠죠.

자기 자신조차 돌보지 못하는 인간이

어떻게 남을 돌본다고 나설 수 있겠습니까?


결국, 사람들이 아무리 이말 저말 해도

진짜 느끼는 사람들은 말보단 

행동으로 증명해낸 사람들에게 끌리죠.


말 뿐인 사람은 넘쳐나는 세상이니까.

행동 하는 사람은 소수이니까.


말로는 누구나 다 할 수 있죠.

그러나 직접 해보기는 어렵죠.

그래서 행동하는 사람은 위대하죠.


남은 인생이 몇천일이나 남았다고 생각하나요?

하루하루 시간이 순식간에 몇달이 가고, 또 일년지났네 이러지 않나요?


남은 인생을 타인의 인생을 성공했네. 실패했네. 평가하면서 

비평가로써의 삶을 사실 계획이십니까?


아니면, 한번 사는 것. 성공과 실패의 두려움은 내다버리고

좋아서 실패해도 힘들어도 좋아서 하고싶은 것을 추구하시겠습니까?

남의 만족을 위해 사십니까? 대통령도 모두가 좋아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죽음이라는 모험이 최후에 기다리고 있는데,

움츠리고 있다가 죽음이 오면 벌벌 떨거나 후회하실 계획이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