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여신 김연아의 노력[의지], 비하인드 스토리

 


 피겨여신 김연아의 노력[의지], 비하인드 스토리


 

 

세계 최고의 피겨스케이트 선수,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대한민국 세계 최초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세계 신기록 11번 수립.

 

 

전용 피겨스케이팅 연습장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새벽과 아침에 훈련하고,

추위에 떨면서, 먹고싶은 걸 참아가며, 부상에도 아픔에도 계속 일어서서 훈련하는 노력파.

 

피겨라는 비인기종목으로, 후원이나 지원없이 열악한 환경에서 쌓아올린 대한민국의 영광.

시끌벅적한 링크장 한 가운데 점프가 잘 안되서 눈물을 뚝뚝흘리면서도 끝까지 참아가며 연습하던 김연아 선수.

열악한 피겨훈련환경에서,

 

사람들이 연습하는데 구경와서 시끄럽게 소란을 피워도, 참아가며 운동해온 나날들.연습 안되는 날에도, 아픈 날에도 힘든 날에도, 쉬지 않고 울면서 부상 참아가면서, 허리통증과 다리통증과, 시끄럽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꾹꾹 참으면서 포기하지않고 연습시간을 눈물을 흘리면서도 다 채워왔습니다.

 

김연아는 다른 피겨선수들보다 2배의 훈련시간을 노력했습니다.

 

일반적인 선수 훈련시간 24시간,

김연아 선수 훈련시간 48시간

- 일주일 기준

 

욕심만큼 잘 안되면 엉엉 울면서도, 잠까지 못자며 속상해했다.

연습도 남들 한번 할 때 두번씩 했다.

 

일본은 얼음폭풍 프로젝트로 20조원을 피겨스케이팅 선수 양성에 투자했다고 합니다.

아사다 마오 선수에게는 개인전용연습장이 2군데가 있었고,

김연아 선수는 그런 국가적 지원을 받지 못한 선수였죠.

가족들의 희생과, 김연아 선수의 열악함을 극복하는 의지력으로 이룬 것입니다.

 


"야식이 언제 먹는 건가요?" - "벤쿠버 올림픽을 마친후" 무릎팍도사 출연中 던진말.

 

김연아 선수는 체중조절 때문에 야식을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김연아 선수의 하루 식단은 아침에 한식을 먹고, 점심에 과일이나 샐러드를 먹고, 저녁에 간단하게 시리얼만 먹고나면, 그다음에는 일체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먹고 싶은 것들이 떠오르면 인터넷하면서 사진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면서 꾹 참아왔다고 하네요.

밤 마다 배고프고, 밤 마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서럽다는 생각도 들었을 김연아 선수...

한창 클 성장기에 밤참이라는 것을 한번도 입에 대지 않는 그런 의지는 타고난 것일까요?

정말 자기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는 타고나야하는 걸까요?

 

"야식이 어떤 시간에 먹는 건지 모른다. 단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연아는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서 몰래 초콜렛을 먹을때도, 단 것을 입에대지 않고 꾹 참을 정도로

의지가 강한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남다른 의지를 보이는 아이.

 

김연아는 외국에 전지훈련을 가서, 훈련을 하면서 부모님이 따라오지 않을때, 다른 아이들이 풀어져서 자유롭게 야식도 먹고, 놀기도 하면서 느슨해지기 쉬운때, 야식을 먹지 않고, 혼자서 양말을 빨고, 미리 내일 할일을 준비하는 자세를 보였다고 합니다.

 

4~5군데의 연습장을 매일 오고가며, 일반인 대관이 끝난 시간인 밤늦은 시간과 이른 새벽에 벌벌떨면서

추위속에서 매일 연습을 해온 김연아 선수. 때때로 낮시간에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으로 연습에 집중하기 어려운 때도 많았습니다. 저라면 그런 상황에서 연습을 못했을 것입니다....

 

연아가 점프에 자꾸 넘어져서 울었대요.

그런데 울면서도 자꾸 점프를 하더래요.

그리고 결국 점프를 성공 시켰대요.

 

 

 

김연아 선수 상처투성이 멍든 발.

김연아 선수의 발의 나이는 40대라고 합니다.

너무 많은 무리한 훈련들로 상한 발...

 

김연아 Says

 

훈련을 하다보면 늘 한계가 온다. 근육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순간,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

주저 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 이런 순간이 오면 뭔가가 말을 걸어온다.

"이정도면 됐어. 다음에 하자. 충분해"하는 속삭임도 들린다. 이런 유혹에 문득 포기해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때 포기하면 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99도까지 열심히 온도를

올려 놓아도 마지막 1도를 넘기지 못하면 영원히 물은 끊지 않는다.

 

나는 스케이터다. 또래 친구들이 '학생'이라고 불릴 때, 나는 '피겨 스케이터'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직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꿈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나를 단련해왔는지를 떠올려보면 매 순간 행복할 수만은 없었다.

 

후회와 미련을 두는 것은 정말 미련한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 뒤를 돌아보고 자책할 시간에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는게 중요했다. 남들은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데, 내가 왜 늦게

출발했을까 자책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니까.

 

김연아는 항상 잘해야 하고 일등이 아니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그 무언가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섭섭했다.

 

누구에게나 우연을 가장한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그것을 붙잡아 행운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기적을 바라기만 하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열악한 국내환경을 이겨낸 놀라운 선수

 

 

 

김연아 선수가 16살때까지만 하더라도, 피겨라는 종목이 국민적 관심을 받는 시기도 아니였고, 매년 수천만원의 자비를 들여 훈련비용과 대관료 등을 대며 훈련을 이어왔습니다.

굉장히 힘들게,

하루는 태릉훈련장, 과천빙상장, 롯데월드 아이스링크 등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훈련을 해야했고,

일반인들, 타종목 선수들과 뒤섞여서 훈련을 해야하는 환경이었습니다.

 

반면, 김연아 선수의 피겨선수생활 동안 쭉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선수는 엄청난 후원과 개인전용 피겨연습장과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해왔죠. 다른 선진국 선수들도 김연아 선수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에서 훈련을 해왔다는 것을요...

 

집중하기 힘들고, 훈련에 방해되기 싶고, 신경이 이만저만 쓰이는 불편한 상황에 놓여야 했었던 것이죠.

이 일화를 접하면서 저는 저자신에게 많은 반성을 하게됩니다. 저는 조금만 신경쓰여도 핑계대기 일수인데.

김연아 선수는 어떻게 이런 환경과 열악한 여건속에서도 의지력으로 참고 노력해왔을까요?

 

환경이나 상황이 사람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는 것을.

김연아 선수가 증명했네요. 환경이나 상황이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은 더 큰 사람이 되있다는 것을요.

 

김연아 선수 연습방해 동영상

 

 

김연아선수는 국제대회에 출전하면서, 수많은 연습방해에 시달려왔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말 힘든 상황에 놓인 가운데에서 묵묵히 훈련을 이어왔네요.

 

국내 링크장에서 연습을 하는데, 일부 피겨맘들이 "CF나 찍으러 다니니까 부상을 당하지"라면서 비꼬며 연습방해까지 시킨적도 있다고 하네요. 그리고 김연아 선수는 보란 듯이 묵묵히 훈련하며 쇼트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연아가 스케이팅을 하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거에요. 하지만 그 고통을 참고, 야단법석을 떨지않고, 심지어 미소까지 잃지 않는 연아의 모습, 그리고 좌절에 대처하는 방식이 무척 좋았어요."

- 브라이언 오셔 코치 say

 

 

김연아 선수와 타 피겨선수와의 비거리 차이입니다.

 

 

매일매일 허리부상과 다리의 틀어짐과 싸우면서 수백번씩 점프훈련을 한 김연아선수의 노력이 만든 결과.

17년이 넘는 시간동안 3번만의 넘어짐과 수십만번의 점프..

 


김연아 선수 눈물을 뚝뚝흘리며 연습을 채우는 영상

 

눈물을 뚝뚝흘리며 다시 연습하는 연아.

 

김연아는 울고 있었다. 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런 컨디션이라는게.. 너무나 안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연습시간을 다 채웠다. 엄마가 오늘은 그만하자고.. 몇번이나 말했지만...

김연아는 울면서도 끝까지 연습시간을 다 채웠다...

 

수천 번의 점프로 휘어진 발목, 수만 번의 회전으로 뒤틀린 허리,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독하게 나를 단련해왔는지 보면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다시 7살로 돌아가더라도 피겨 스케이팅을 선택할 것 같다.

피겨 스케이팅은 내 인생의 전부다.  - 김연아 Says

 

 

여분의 부츠를 살 여유가 없어서 투명 테이프로 부츠를 고정시키며 연습하던 김연아.

 

 

김연아 선수는 1990년 9월 5일에 부천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에 언니를 따라 스케이트장을 갔다가, 코치에게 피겨스케이트 선수로써 가능성을 발견한 후, 스케이트 선수로써 훈련을 하게 었다고 합니다.

 

이런 김연아 선수의 노력과 의지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보았습니다.

왜 김연아 선수의 7분의 장면을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저절로 눈물이 흐르는지,

가슴이 찡하고 뭉클해지면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어느날 뚝딱하고 피겨챔피언이 된 김연아 선수가 아니었네요.

매번 넘어지고, 부상에 시달리고 그걸 극복하고 다시 도전하고, 자기자신과 끝없이 싸워야 했다는

17년의 노력과 훈련해왔던 세월의 무게가 김연아양에게서 느껴집니다.

 

3만번이 넘는 점프로 발목이 기형적으로 휘어지고, 발가락은 상처투성이..

틀어진 허리부상에 시달리고 파스를 붙이고, 아픔을 참아가며 이어나간 훈련들.

손에도 굳은살이 박히고, 스케이트화를 묶던 손은 퉁퉁부어 굳은살이 다 박혀있었습니다.

하루에 6번씩, 넘어짐을 경험하면서 일년에 1800번 넘어지면서 피겨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을 3만번넘게 넘어져왔다고 합니다.

 

"꿈...

그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의 경쟁 상대는 '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먹고 싶은걸 모조리 먹어버리고 싶은 나, 조금 더 자고 싶은 나,

친구들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

내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대상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나'였던것이다.

 

- 김연아 자서전 7'분드라마' 中